영상매체는 시간과 공간을 빛으로 기록한다. 아무도 볼 수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시간은 프로젝션의 빛으로 투사되어 사라지는 영상과 같다. 다양한 구도의 촬영, 편집, 여러 장면 조각에 따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영상에 보이는 것 이상의 경험하지 못했던 과거와 앞으로 볼 수도 있을 미래를 공존하게 한다. 이렇게 순간의 움직이는 이미지들은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꿈과 같은 차원을 교차하게 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기억과도 닮았다.
나는 불완전하며 구조화된 사회적 언어 너머에 존재하지만 쉽게 개념화되지 않는 시간, 빛, 생명과 같이 존재하기 위한 서로의 연결성과 그 경계에 대한 고민으로 작업의 생명력을 단련한다. 유한한 삶의 다양한 경계 속에서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질문과 불확실한 답을 안고 서로의 지속된 연결을 위해 설계된 맥거핀(MacGuffin)일 수도 있을 찰나의 빛을 조각한다. 지난 작업 <녹색 광선을 찾아서 2019~2022>는 일출 직전에 반사되는 마지막 광선의 광학 현상인 녹색 광선을 기다리며, 빛의 변화를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어떠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관찰이 첫 번째 단계가 된다. 오랜 시간 찰나의 녹색 광선을 기다리며 법칙화 될 수 없는 자연현상의 불확정성*에 대한 고민을 시각적인 언어로 풀어내고자 하였다. 나는 이 관찰의 행위가 현상을 변화시킨다는 것 그래서 현상의 실체를 알기란 불가능하며 진실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분노와 함께 동시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순간을 담기위한 장기간의 반복된 관찰과 기다림 속에서 블루 아워(Blue Hour)라는 신비한 푸른색 시간을 마주하게 된다.
블루 아워는 해 뜰 녘과 해 질 녘의 박명이지는 시간대의 오묘한 푸른빛의 시간으로 가장 캄캄한 밤의 시간에서 이어지는 짙은 푸른빛이 세상을 덮는 시간이다. 몇 분도 되지 않는 블루 아워 동안은 모든 자연 속 생명체들이 잠시 숨을 멈춘 듯 고요해지다 순간의 적막으로 이어지며, 짙은 푸른빛 세상에 둘러싸인다. 낮과 밤, 밤과 낮의 경계이자 전환점이며 그렇기에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이중성을 가진다. 또한 밤과 아침을 이어주는 통로이기도 하다.
이번 Blue Hour 전에서는 블루 아워의 시간을 타임랩스로 담은 4채널 영상설치, 밤의 시간부터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지는 불면증 퍼포먼스 그리고 블루 아워의 짧은 시간의 아쉬움을 움직이는 QR코드로 표현한 신작을 선보인다. 화면을 가리는 QR코드가 제거되고 일출을 맞이할 때 각자의 삶 속 시간의 틈 속에 새겨있는, 기다림 끝에 나타나는 찰나의 빛을 만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의 원리: 자연현상은 사실 자체로서 법칙화 할 수 없으며 관찰자의 인식 한계 때문에 통계적인 확률로밖에 관찰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서로가 상호작용하는 입장에서 관계한다는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