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HIBITION

공백, 고백

   끼익- 끽- 끼익-

   공간을 들어서면 시끄러운 마찰음이 공기를 떠다니며 나의 귓전을 때린다. 이 불편한 소음은 기계의 결함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기울기 차이로 발생하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름이 말라 부드럽지 못하게 맞닿는 면으로 인해 생겨난다. 하지만 어쩐지 이 소음은 나에게 망각의 서곡(overture)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늘 이미 정돈되어 내 안의 마지막 페이지가 된 것 같지만, 마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연주되는 서곡처럼 매 순간, 새로운 시간 속에서 도입부가 되어 이야기가 시작되도록 이끈다.

   살아가며 사라지는 곳

   우연한 기회로 나의 대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대전의 재개발사업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년, 이 <도시 기억 프로젝트>가 완료되었다는 기사를 접하였다. 도시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받아들여야 했던, 문화적 특성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던 지역의 주요 건축물들이 기록으로 남았다니 다행이라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이 생긴다. 이미 떠나버린 이들의 흔적과 아직 남은 이들이 함께하는 그 자리는 어떨까. 사라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진정한 삶의 터는 어떤 모습일까.

   대전에서 머무는 동안, 목척교 주변의 재개발 지역인 목척5길, 2길, 6길, 4길, 7길... 과거의 주요 시가지였던 목척길의 좁은 골목을 다니며, 유령같은 도시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흔적을 마주했다. 큰 길의 건물들 바로 뒤에 마치 다른 세상처럼 생경하게 느껴지는 골목에는 떠난 이들의 흔적과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함께한다. 빨래가 널어진 골목길 곳곳 집 문 앞에는 의자가 놓인다. 이 의자에는 아침이면 사람들이 모여 오늘의 이야기를 나누고, 이방인에게 이야기 해준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라고.
   
   Timing Belt

   타이밍벨트. 마치 순간을 담아 나를 것 같은 이 이름은 나를 매료시킨다. < Blank on Timing >은 자동차 부품인 타이밍벨트를 재료로 만들어진다. 자동차의 동력 전원을 발생시키기 위한 이 벨트는 내부에 일정한 간격으로 이가 있다. 그리고 이의 수 그리고 벨트가 감싸 도는 축이 되는 원반 모양인 풀리의 지름과 모터의 속도에 따라 다른 속력으로 움직인다. 홈이 촘촘히 나 있는 원반 형태의 부품인 풀리와 벨트의 내부의 이가 순서대로 맞물려가는 것은 마치 시계의 태엽이 감기는 장면처럼 보인다.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듯 시간의 흐름을 들려주며, 맞물려 돌아가는 이 움직이는 물체는 앞으로 뒤로 회전 운동을 지속한다.

   무수한 검은 벨트들은 시끄럽게 울리는 모터의 소리 속에서 공간과 벽을 가로지르며 느리게 회전 운동을 반복한다. 벨트에 가까이 다가서면 글을 읽어가는 속도로 움직이는 하얀 텍스트들이 보인다. 이는 재개발 지역에서 사라짐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은 이동의 시간 속에서 일부가 지워지고, 그렇게 잃어버린 자리에 새롭게 자라난 조각들이며, 떠남을 기다리는 말들이다. 이 순간을 담은 타이밍벨트들은 병렬되고 중첩되어 공간에 모였고, 이곳에서 다시 시간의 차이를 발생시킨다. 소음의 울림 속에서, 벨트에 올려 있는 어절들과 이야기는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서로 맞물려 돌아가며 마주치고 헤어짐을 반복한다. 활자들은 동력 운동의 진동으로 인해 벨트의 표면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이렇게 다시 비워지는 과정을 통해 시끄러운 공백으로 드러난다.

   기름때가 묻어나는 검은 벨트를 보고 있자면,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간 일기를 누가 볼까 까맣게 지운 기억이 떠오른다. 발화되지 못한 이야기는 마음에 담아둔 감정을 쓰고 또 써서 검게 메워간 페이지처럼 < Blank on Timing >에서 검은 벨트로 표현된다. 이 점철된 감정 속에서, 기록된 것들은 박락된다. 그렇게 불완전한 연대기에서 사라지며 살아가는 ‘너와 나’이자,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재생한다. 

기간
2022-07-14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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