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HIBITION

변덕스러운 달

   3D 그래픽 작업을 장시간 지속하다 보면 현실의 사물이나 풍경이 가상의 환경처럼 보이는 순간이 생긴다. 우리가 눈으로 무언가를 인식할 때 빛에 반사하는 겉면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재와 가상의 것은 시각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감각에서 시작하여 물질과 비물질의 관계를 연구해 온 나의 디지털 작업들은 미술 장르 중 물성이 가장 드러나는 조각을 소재로 하고 있다. 크로마키 기법을 활용하여 모니터상에서 물성이 사라지게 만드는 '유령조각'을 시작으로 머릿속에서 조형 활동과 컴퓨터 프로그램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After effect' 연작을 만들었고, 그 중간에는 자연의 겉면을 모방하는 'Surface' 연작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물질과 비물질은 정보의 차원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감을 활용하여 대상을 인식하기 때문에 가상의 영역은 언제나 괴리감이 들 수밖에 없다. 최근 메타버스로 인해 가상 경제가 구축되어가는 시점에서도 ‘가상’이라고 부르는 영역은 우리가 ‘그렇다 치자’라고 합의한 것일 뿐이다. 이미 CG기술은 현실과 차이가 없는 시대임에도 영화의 몰입감은 현실을 초월하지 못한다. 가상의 영역이 현실과 유리되지 않는 순간은 무의식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일어나야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그러나 가상이 대안으로서 활용되는 점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영화나 게임에서 시선이 해방되는 것처럼 가상의 기법은 세계를 다른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이는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적용된다. 화폐나 예술작품 모두 넓은 의미에서 가상이며 우리는 가상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신작에서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빌려 조각에서 중력을 사라지게 하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크로마키, 3D스캐닝을 통한 영상, 그리고 AR까지 총 세 가지 방식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조각이 중력에서 해방되는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작품에 있어서 조각은 양쪽 공간을 오가는 매개로서 활용된다. 조각을 가상의 공간에 배치하는 과정은 정보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구멍 난 조각'에서는 3D 스캔 과정에서 생긴 구멍이 드러난다. 실제 조각이라면 구멍을 통해 조각의 내부가 보여야 하지만 영상에서는 내피가 투명하게 반응한다. 이는 3D 시뮬레이션에서 안쪽 면의 렌더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우리 눈이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현상은 정해진 시스템 상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이렇듯 가상계와 실재계를 중첩시키며 가능성과 오류들을 점검하는 본 전시를 통해 오늘날 사물이 갖는 의미는 어떠한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기간
2022-07-14 ~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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