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EXHIBITION

JUMBO SHRIMP

Oxymoron : 모순형용, 겉으로 보기에 이치에 어긋나거나, 양극단에 위치 할 법한 어구를 엮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독특한 수사법이다. 대표적인 예로 ‘크다’는 뜻의 jumbo와 ‘작은’ 해양생물인 shrimp가 합쳐진 '점보 쉬림프'가 있다.

2.
기억에서 잊혀져도 디지털은 잊지 않는다. 휴대폰을 바꿔도 구름을 타고 넘어온다. '7년 전 오늘 사진을 확인하세요' 불현듯 뜬 인공지능의 제안에 한 장씩 사진을 넘겨본다.
아파트 입구에 버려진 사람보다 큰 곰 인형 사진. 인형의 가슴팍에는 A4용지가 붙어 있다. '곰 인형 버리신 분, 가져가세요. 7동에 사는 여자분' 하필이면 나는 7동에 산다. CCTV를 돌려보며 범인을 찾았을 아저씨와 자기보다 큰 인형을 들쳐 엎고 낑낑댔을 여자를 떠올려 본다. 인형 앞에 멈춰서는 시간이 길어진다. 불현듯 어릴 때 버린 곰 인형이 커서 돌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에 빠져든다.

3.
어린 시절 처음 간 스키장에는 1인 리프트가 있었다. 매번 허공의 줄에 매달려 위태롭게 공기를 항해했다. 그물이 있지만 언제나 불안했다. 나의 손이 되어줄 폴대가 추락한다. 그물은 잡아낼 듯 말듯 추락을 받아낸다. 마치 나 대신 그 폴대로 제물에 바친 것 같았다. 
그 후로 리프트를 탈 때 항상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가장 많이 추락한 건 오래된 인형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떨어진 그 아이가 보여야 안심이 됐다. 곰 인형의 초점 없는 눈이 나를 원망하듯 바라
본다. 안심과 동시에 죄책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그 안심도 일시적일 뿐, 근원적인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나 연약한 그물이 항상 거기에 있다. 확인할 방법은 직접 떨어져 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 쳐진 그물이 오히려 끝나지 않는 공포로 몰아넣는다.

4. 
CAPTCHA  [ ?kæpt?? ]  //: 자동 로그인 방지 시스템, 사용자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구분해주는 기술. 초기에는 스팸이나 봇을 막기 위해 사용됐지만, 최근엔 컴퓨터가 인식할 수 없는 고문서 복원이나 이미지 인식을 위해 사용된다.

5.
'I'm not a robot(나는 로봇이 아닙니다)' 
사이트의 검열이 나를 멈춰 세운다.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인공지능이 말해준다. 우리의 정체성은 매번 의심받는다. 
컴퓨터는 명확한 일을 잘한다. 명확히 표현되는 단어와 사건을 인식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불명확한 것 앞에는 멈춰 선다. 캡챠[captcha]가 그렇다. 단순해 보이지만 해석
이 필요하다. 해석은 이제까지 인류와 한 개인이 쌓아 올린 경험의 종합이다.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지만, 인류는 모든 지적 활동의 명예를 걸고 캡챠를 하고 있다. 컴퓨터는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시키면서, 우리를 관리하고 지적 능력을 평가한다. 적당히 빈칸을 채운다. 그러자 더 복잡한 캡챠가 등장한다. 이제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정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캡챠의 격자가 마치 리프트의 그물처럼 나를 바라본다. 이번에도 나는 그물에 몸을 던지지 못한다.
'I'm not a robot' 체크박스가 뜨자 사이트를 닫아버린다.
 
6.
세상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쌓아 올린 세계는 아무리 촘촘해도 빈틈이 있게 마련이다. 그물이 세상의 뼈대를 보여주는지는 몰라도 삶 전체를 덮지는 못한다. 캡챠는 인간과 로봇을 구분
하지만, 인간의 특성을 알지 못한다. 마치 듬성듬성 엮인 그물처럼 인간이라는 토대만을 확인할 뿐이다. 어쩌면 무언가를 해석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점보 쉬림프'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현상과 감정들을 엮어 새로운 층위의 의미를 탐구한 작업이다. 사회 곳곳을 떠도는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 이미지들’을 수거해 이를 조각의 형태를 빌어 물리적인 공간에 재현한다. 두 개의 전시 공간과 다섯 개의 사건은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시선을 통해 또 다른 해석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글 : 오묘초

기간
2021-07-01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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