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유목연 작가님와 2기 조영주 작가님 서울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리는 <홈리스의 도시>전시에 참여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http://art.arko.or.kr/nr5/?c=2/12&memoryuid=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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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명: 홈리스의 도시
○ 전시개막: 2016년 7월 8일(금) 오후 6시
○ 전시기간: 2016년 7월 8일(금) - 2016년 8월 7일(일)
○ 참여작가: 김해민, 안민욱, 유목연, 이원호, 이주영, 조영주, Leah Borromeo,Fabian Brunsing, Klega, Van Bo Le Menzel, Jaye Moon, Sherman Ong, Daniel Ortiz, Sim Chi Yin, Elvis Yip Kin Bon, U-TT
○ 관람시간: 오전 11시-오후 7시(매주 월요일 휴관, ‘문화가있는날’ 7월 27일(수) 오후 9시까지 연장)
○ 전시장소: 아르코미술관 제 2 전시실
○ 전시해설: 주중 2시, 4시 / 주말 2시, 4시, 6시
○ 작품: 사진, 설치, 영상 외
○ 기획: 목홍균 (독립큐레이터)
○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미술관
○ 협력: 레고코리아
○ 전시문의: 아르코미술관 학예실 02-760-4608/02-760-4625, art.arko.or.kr
□ 전시소개
자동차의 제왕 포드는 시카고 어느 도살장의 고기 운송방식에 착안해 획기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한다. 포드주의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1920년대부터의 도시변화를 분석하는 기반이 된다. “지구에서 가장 무정하고 인공적인 장소, 도시. 그 궁극의 해법은 도시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를 떠남으로서 도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포드,1922) 인종주의자로 유명한 포드는 그의 자동차로 하여금 백인과 흑인이 각각 그들의 거주지를 찾아 도시를 떠나도록 돕는다. 이는 당시의 주택정책과 교묘히 맞물려 거주분리의 시작이 된다. 이렇게 거주지 즉 집의 본질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바슐라르는 오늘날 도시에서 ‘집’은 상실되어 단지 거주하는 ‘기계’의 의미만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집’이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최초의 세계라는 것이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공간, 가족 간에 사랑과 믿음을 나누고, 함께 모여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장소, 정신적인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 다음 세대를 이어갈 자녀를 출산하고, 노인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곳. ‘집’ 은 사전적으로 이와 같이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하이데거의 말처럼 현대인은 정주성을 ‘상실’한 채 좌표 위를 떠도는 ‘홈리스’인 것이다.‘홈리스’는 집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숙인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의 상태를 말하는 형용사다. 하지만 집(물리적)을 상실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노숙임을 감안한다면 홈리스는 곧 노숙자인 셈이다. UN 에서는 홈리스를 집이 없거나, 옥외 또는 여인숙에서 잠을 자는 사람, 집이 있지만 UN의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집에서 사는 사람 그리고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 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집이 있어도 홈리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퀴블러 로스는 그녀의 연구서 <죽음과 죽어감>(1971)에서 불치병이라는 진단에 반응하는 다섯 단계를 제시했다.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다고 부정하는 첫 단계를 시작으로 분노, 타협, 우울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없으니 준비라도 잘하자는 체념과 수용이 마지막 단계이다. 전시는 ‘집’과 ‘상실’ 사이에서 오는 다양한 상황과 감정들을 퀴블러가 제시한 다섯 단계를 적용해 바라보고자 한다. 인간의 모든 고통은 혼자 조용히 집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고, 철학은 본래 집에 머무르기 위한 충동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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