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그래픽 작업을 장시간 지속하다 보면 현실의 사물이나 풍경이 가상의 환경처럼 보이는 순간이 생긴다. 우리가 눈으로 무언가를 인식할 때 빛에 반사하는 겉면만 볼 수 있기 때문에 실재와 가상의 것은 시각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감각에서 시작하여 물질과 비물질의 관게를 연구해 온 나의 디지털 작업들은 미술 장르 중 물성이 가장 드러나는 조각을 소재로 하고 있다. 크로마키 기법을 활용하여 모니터상에서 물성이 사라지게 만드는 '유령조각'을 시작으로 머릿속에서 조형 활동과 컴퓨터 프로그램의 유사성을 파악하는 'After effect' 연작을 만들었고, 그 중간에는 자연의 겉면을 모방하는 'Surface' 연작을 진행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물질과 비물질은 정보의 차원에서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번 신작에서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을 빌려 조각에서 중력을 사라지게 하는 시도를 진행하였다. 크로마키, 3D스캐닝을 통한 영상, 그리고 AR까지 총 세 가지 방식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조각이 중력에서 해방되는 이미지를 연출하였다. 작품에 있어서 조각은 양쪽 공간을 오가는 매개로서 활용된다. 조각을 가상의 공간에 배치하는 과정은 정보의 손실이 발생하는데, 예를 들어 '구멍 난 조각'에서는 3D 스캔 과정에서 생긴 구멍이 드러난다. 실제 조각이라면 구멍을 통해 조각의 내부가 보여야 하지만 영상에서는 내피가 투명하게 반응한다. 이는 3D 시뮬레이션에서 안쪽 면의 렌더링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서 우리 눈이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현상은 정해진 시스템 상에서 보지 못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었다. 이렇듯 가상계와 실재계를 중첩시키며 가능성과 오류들을 점검하는 본 전시를 통해 오늘날 사물이 갖는 의미는 어떠한지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